같은 장소에 있었던 두 사람이 집에 돌아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그날 먹었던 음식이나 지나가던 사람의 행동을 기억합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도 머릿속에 남은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우리는 흔히 자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눈앞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동일한 비중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그중 일부를 선택해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한 정보는 의식에서 뒤로 밀어냅니다.
하루 동안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놓친다
길을 걸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다고 해서 옆 테이블에서 오가는 모든 대화를 듣고 있지도 않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도로 위의 모든 물체를 똑같이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런 선택이 없다면 우리의 뇌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압도될 것입니다.
따라서 뇌는 현재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대부분 의식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같은 환경에서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갑자기 특정 물건이 많이 보이는 이유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입니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특정 색상의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 색의 자동차가 자주 보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 이 차가 유행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주변의 자동차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에도 비슷한 자동차가 있었지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관심이 생기면서 관련 정보가 이전보다 눈에 잘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된 뒤 그 단어가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경험도 비슷합니다.
정보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정보가 이제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분이 나쁠 때 나쁜 일만 보이는 이유
이 현상은 감정과도 연결됩니다.
하루 종일 일이 꼬였다고 느끼는 날을 생각해보세요.
아침부터 작은 실수가 있었고, 누군가의 말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예상보다 일이 늦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까지 막혔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런 날에는 하루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에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간 순간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문을 잡아줬을 수도 있고, 예상보다 일이 빨리 해결된 순간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늘은 안 좋은 날’이라는 방향으로 주의가 기울어져 있다면 이런 정보는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단순한 조언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친 것과 기회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다르다
‘운이 좋다’는 말도 이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기회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됩니다.
같은 정보를 접해도 무엇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기회를 발견한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는 능력, 환경, 경제적 조건, 우연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있습니다.
기회가 없었던 것과, 기회가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정보로 분류되어 지나쳤던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뇌의 필터를 이해한다고 현실이 마음대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뇌의 필터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원하는 현실이 만들어진다거나,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뇌가 정보를 선택한다고 해서 현실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현실의 모든 정보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는 실제로 일어난 모든 사건의 목록이 아니라, 그중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한 것들의 조합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왜 나에게는 이런 일만 생길까?”
라는 질문 대신,
“나는 지금 어떤 정보만 보고 있는 걸까?”
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내가 놓치고 있는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단점만 계속 보였다면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은 어땠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일만 떠오른다면 그 과정에서 실제로 잘된 부분은 없었는지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면 거창한 성공의 신호를 기다리기보다 평소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정보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세상 전체가 아니라 뇌가 선택해서 보여준 세상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놓쳤다고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주의 밖에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볼 때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무엇을 보지 못했을까?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일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