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때부터 50년 넘게 한 여성을 어머니로 두고 살아온 남성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갑작스럽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당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새어머니였다. 두 사람 사이에 실제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당사자 모두 알고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오랜 기간 어머니와 아들로 가족관계가 유지돼 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유전자 검사 결과만으로 법률상 관계까지 곧바로 사라지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아버지가 남긴 서울 아파트의 상속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이 시작됐다는 점이 사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다만 새어머니가 어떤 구체적인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파트 상속과 관련됐을 것이라는 부분은 현재 사연자인 A씨가 제기한 의문이다.
네 살 때부터 한 가족…아버지 사망 3년 뒤 소장 도착
10월 1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 소개된 사연에 따르면 A씨는 환갑을 앞두고 작은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A씨는 아버지가 현재의 새어머니와 결혼하기 전에 태어났다. A씨가 네 살 무렵 아버지가 재혼했고, 이후 A씨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친생자인 것처럼 출생신고됐다.
그 뒤 새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동생이 태어났고 네 사람은 한집에서 가족으로 생활했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새어머니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생이 태어난 뒤에는 새어머니가 동생을 더 챙긴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가족관계 자체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A씨는 군 복무를 마친 뒤 일찍 독립했다. 이후에도 가족과 큰 충돌을 일으키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아버지가 사망했다. 아버지에게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가 있었지만 새어머니가 계속 해당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A씨는 곧바로 상속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새어머니와 동생이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고 아버지 제사도 A씨가 혼자 지내게 됐다. 그런 상태가 약 3년 이어진 뒤 법원에서 A씨 앞으로 소장이 도착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50년 넘게 어머니로 살아온 새어머니였다. 소장에는 두 사람 사이에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새어머니 측은 법원에 유전자 검사도 신청한 상태였다.
유전자 검사에서 불일치하면 법적 모자관계도 끝날까
이번 사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물학적인 혈연관계와 법률상 친자관계가 반드시 동일하게 판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A씨와 새어머니가 실제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는 양측이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면 생물학적인 모자관계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전제된 상황이다.
하지만 김수진 변호사는 상담에서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기존의 법률상 친자관계가 자동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과거 친생자로 출생신고된 과정이 사실상 입양을 위한 것이었고 실제 가족생활에서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됐다면 출생신고가 입양신고와 같은 기능을 한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당사자가 입양할 의사를 가지고 친생자 출생신고를 했으며 실제로 부모와 자녀로 생활하는 등 입양의 실질적인 요건이 갖춰진 경우에는 형식적인 신고 방식에 문제가 있더라도 입양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가 이어져 왔다.
반대로 단순히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로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입양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당시 부모와 자녀 관계를 만들겠다는 의사가 있었는지, 실제로 보호하고 양육했는지, 장기간 어떤 가족관계를 유지했는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함께 살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도 유전자 검사 결과는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재판 결과가 결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핵심은 수십 년 동안 유지된 A씨와 새어머니의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양친자 관계였는지 여부다.
정식 입양신고 없었어도 50년 가족생활이 중요
A씨에게는 별도의 입양신고가 없었다. 아버지가 재혼한 뒤 A씨를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친생자인 것처럼 신고했고, 이후 가족은 그 상태로 수십 년을 살아왔다.
김 변호사는 이런 사건에서는 형식적인 서류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새어머니가 A씨의 존재와 출생신고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어린 A씨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는지, 함께 거주하면서 보호하고 양육했는지 등이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A씨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서로 어머니와 아들로 관계를 유지했는지 역시 살펴볼 대상이다. 어린 시절 같은 주소에서 장기간 생활한 기록뿐 아니라 학교생활, 병원 이용, 가족행사, 생활비 부담 등 일상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모이면 두 사람이 실제로 어떤 가족관계를 형성했는지 판단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A씨가 어린 시절 새어머니에게 차별을 받았다고 느꼈다는 사정만으로 양친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가족 내부에서 갈등이나 차별이 있었다는 문제와 법률상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하고 장기간 유지했는지는 서로 다른 차원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이 보게 되는 것은 단순히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 하나가 아니라 출생신고 당시 상황과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가족생활 전체라고 볼 수 있다.
주민등록·생활비 자료 등 실제 가족관계 입증이 관건
A씨가 소송에 대응하려면 오랜 기간 새어머니와 실제 모자관계로 생활했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과거 함께 거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초본을 비롯해 학비와 병원비, 생활비를 주고받은 자료 등이 활용될 수 있다. 각종 공적 서류에서 새어머니와 A씨가 모자로 기재된 자료가 있다면 가족관계의 실질을 판단하는 정황자료가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두 사람을 실제 어머니와 아들로 알고 지낸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의 사실확인서도 검토할 수 있다. 가족사진이나 가족행사 기록 등 역시 다른 객관적 자료와 함께 관계의 경과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연은 몇 년 전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도 상속 문제가 바로 정리되지 않았고, 약 3년이 지난 시점에 새어머니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는 특징이 있다. A씨는 이 시점 때문에 서울 아파트 문제와 이번 소송이 관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다만 현재 알려진 내용만으로 새어머니가 A씨를 상속에서 배제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실제 재판에서는 소송을 낸 경위와 당사자들의 관계, 출생신고 당시 상황, 수십 년 동안 형성된 가족생활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번 사연의 핵심은 유전자 검사에서 혈연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50년 넘게 유지된 가족관계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친생자로 신고된 과정이 실질적인 입양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따라 법률상 관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A씨에게는 단순히 유전자 검사 결과를 다투는 것보다 실제로 새어머니와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했다는 점을 뒷받침할 자료를 확보해 소송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