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신에게만 관대할까?

우리는 공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규칙을 어기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쉽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정작 같은 행동을 내가 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으면 “시간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늦었을 때는 “오늘따라 일이 너무 많았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하면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실수하면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감정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화를 냈을 때는 “그만큼 화가 날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같은 행동인데 판단의 기준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내로남불’​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순한 유행어나 도덕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하면 이유가 있고, 남이 하면 성격이 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고, 그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무뚝뚝하게 대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왜 그렇게 불친절했어?”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수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피곤했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거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거나, 상대방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뚝뚝하게 행동하면 어떨까요?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행동만 가지고 판단하게 됩니다.

“원래 저런 사람이야.”

“성격이 별로네.”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행동은 상황을 통해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판단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에게는 수많은 사정이 존재하지만, 타인에게는 결과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자신을 변호할까?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 자신에게 관대할까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기합리화입니다.

자기합리화란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심리적 과정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고 싶고, 합리적인 사람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실제 행동이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과 충돌하면 불편함이 생깁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라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기도 하지만,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바로 행동에 이유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상대방도 잘못했잖아.”

“내가 먼저 그런 게 아니야.”

“이번에는 특별한 상황이었어.”

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나의 능력, 실패는 환경의 탓

이러한 경향은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야.”

사업이 잘됐습니다.

“내 판단이 정확했어.”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내 능력을 인정받은 거야.”

그런데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떨까요?

시험을 망쳤다면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했다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 상사가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해석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는 어느 정도 우리에게 필요한 기능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모든 실패를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만 받아들인다면 다시 도전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자기방어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자기방어가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모든 실패에는 외부의 이유가 있고, 모든 성공에는 자신의 능력만 있다고 믿기 시작하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기회가 사라집니다.

타인의 행동에는 왜 더 엄격할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는 상황보다 행동 자체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누군가 회사에 늦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왜 늦었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아이가 아팠을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가 있었을 수도 있고, 정말 단순히 늦잠을 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늦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의 원인을 그 사람의 성격에서 찾기 쉽습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야.”

“원래 게으른 사람이야.”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야.”

반대로 내가 늦었을 때는 다릅니다.

나는 내가 왜 늦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해질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나는 공정하다’는 믿음이다

사실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은 언제나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확신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기 어려워집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신이 옳다는 이유를 찾는 데 훨씬 익숙합니다.

그래서 의견이 충돌하면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하기보다 상대방이 왜 틀렸는지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내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의심합니다.

내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맥락을 살피면서도 상대방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결과만 봅니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을 두 개의 기준으로 판단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매우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판단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바라볼 때 내면에서 바깥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는 바깥에서 안쪽을 추측합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로남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자기방어와 자기합리화가 자연스럽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판단을 한 번 더 의심할 수는 있습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이렇게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똑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상대방에게 적용하고 있는 기준을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친구가 약속을 어겼을 때 화가 났다면, 내가 과거에 비슷한 행동을 했던 적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비웃고 있다면, 나 역시 같은 실수를 했을 때 어떤 이유를 들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면, 나 역시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없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무조건 비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 보자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관대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실수했다.”

라고 인정하는 것과

“이런 상황이었으니 내가 한 행동은 잘못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고, 후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우는 것일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기이해는 자신의 사정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책임까지 없애지는 않습니다.

결국 공정함은 남을 판단하는 기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공정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공정함은 어쩌면 그보다 먼저 시작됩니다.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책임을 나에게도 요구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허용하는 실수를 나에게도 허용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보았을 때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의 실패를 보았을 때 그 사람의 능력을 단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실수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변명하는 대신,

“내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관대하다

어쩌면 인간은 완전히 객관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타인에게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그 약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누군가를 쉽게 비난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잠시 멈춰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나였다면, 나는 같은 판단을 했을까?”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공정한 사람은 남의 잘못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도 외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만 관대했던 이유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관대함을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조금씩 나누어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가장 어려운 판단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판단할 때는 수많은 이유를 찾아냅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무조건 엄격하게 몰아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관대한 만큼 다른 사람의 사정도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그 질문 하나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 바꿀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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