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단점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인지, 다른 사람의 말을 자주 끊는지, 쉽게 화를 내는지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똑같은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을 때도 우리는 그렇게 빨리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갈등은 상대방의 성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심리적 맹점’ 역시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행동이 보이고 나에게서는 이유가 보인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20분 늦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보이는 사실은 간단합니다. 상대가 또 늦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면 ‘시간 개념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늦었을 때는 판단 과정이 달라집니다.
도로가 예상보다 막혔거나 출발 직전에 전화가 왔거나 갑작스럽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는 항상 그 행동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같은 행동이라도 타인과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화 중 끼어들면 무례하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끼어들었을 때는 중요한 말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목소리를 높이면 성격이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화를 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느낍니다.
이 차이가 반복되면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집니다.
좋은 의도와 좋은 결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발견하기 어려운 맹점은 ‘의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걱정돼서 한 말이야.”
“도와주려고 그랬어.”
“너랑 친하니까 그렇게 말한 거지.”
이 말들이 거짓이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로 좋은 의도로 행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하는 사람의 의도와 그 행동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부모는 걱정해서 계속 조언하지만 자녀에게는 통제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친구를 편하게 생각해서 농담했지만 상대에게는 무시당한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끊임없이 방법을 알려줬는데 정작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행동을 의도를 중심으로 평가합니다.
상대방에게는 그 의도가 완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가 직접 경험하는 것은 결국 말투와 표정, 행동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좋은 뜻이었는데 왜 저렇게 받아들이지?”라는 억울함이 생깁니다.
자기 이미지가 오히려 자신을 가릴 때
사람에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나는 남을 배려하는 편이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나는 뒤끝이 없다.’
‘나는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자기 이미지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는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 효과도 만들어냅니다.
스스로를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생각한다면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배려 없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동 자체를 살펴보기 전에 이런 생각이 먼저 등장합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이번에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평소 친절한 사람도 어느 순간 무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도 특정 상황에서는 상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한 번의 행동이 그 사람의 전체 성격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원래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그 행동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주지도 않습니다.
왜 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낄까
갈등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상대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네가 먼저 화를 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직전에 들었던 비꼬는 듯한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먼저 기분 나쁘게 말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중요하게 보이는 장면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반면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직접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는 맥락이 붙고 상대의 행동에는 결과가 남습니다.
이 차이가 커질수록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먼저 공격받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는데 비슷한 갈등이 반복된다면
모든 인간관계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무례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일방적인 관계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무조건 자신의 심리에서 찾는 것 역시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롭게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등장하는 사람은 계속 달라지는데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입니다.
직장을 옮겨도 항상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친구가 달라져도 매번 자신만 관계를 챙긴다고 생각하거나, 연애할 때마다 어느 순간 상대가 대화를 피하기 시작한다면 공통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공통점이 반드시 자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 반복해서 끌리는 선택 패턴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기대하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또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라는 설명만으로 끝내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은 때때로 한 번의 사건보다 많은 정보를 줍니다.
자신의 맹점은 왜 발견하기 어려울까
맹점이 어려운 이유는 완전히 숨겨져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과 너무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볼 때 그동안 살아온 경험과 당시의 감정, 의도, 상황을 함께 봅니다. 그래서 행동만 떼어놓고 바라보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앞에 나타난 행동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바로 이 거리의 차이 때문에 남의 문제는 선명하고 자신의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아주 흔한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자기 문제를 정말 모르는 걸까?’
그런데 상대방 역시 우리를 바라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과 자신의 맹점을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심리적 맹점을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에서 자신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잘못한 상황에서 억지로 자신의 책임을 찾는 것은 객관화와 다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야가 언제나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투를 상대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별 의미 없이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건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크게 받아들였던 행동 역시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맥락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객관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정확한 답을 알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을 가능성을 남겨두는 태도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은 멀리서 보기 때문에 선명합니다.
자신의 행동은 언제나 그 행동의 한가운데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설명과 이유와 감정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늦게 발견하는 모습은 아주 깊숙이 감춰진 모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매일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된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