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나에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말투가 거슬리고, 행동 하나가 신경 쓰이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문제 삼지 않는 모습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정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아”라고 넘기기에는 반응이 너무 강합니다.
이럴 때 한 번쯤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저 사람에게 이렇게 강하게 반응할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끊임없이 평가합니다.
누군가 지나치게 자신을 자랑하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면 이기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조용한 사람을 보면 답답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데 특정 사람에게만 유난히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특정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강한 감정이 생긴다면 그 감정의 일부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기억, 욕구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
칼 융의 심리학에서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자신의 측면을 ‘그림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이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밀어낸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배웠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행동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에서 자신감 있게 자신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동료를 만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난 척하지?”
라는 생각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상대방의 행동만 싫은 것일까요?
혹시 나도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다만 그렇게 행동하면 오만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상대방의 자신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이유는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허락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질투도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질투 역시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질 때 우리는 쉽게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나는 왜 저 사람을 축하해주지 못할까?”
하지만 질투라는 감정을 무조건 없애야 할 감정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을 때 부러웠다면 단순히 친구의 성공이 싫은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비슷한 성취를 원하고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불편했다면 나에게도 자유에 대한 욕구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질투를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가 보입니다.
반복되는 인간관계에도 이유가 있을까
무의식은 특정한 사람을 싫어하는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에서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과 갈등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상처받고, 관계가 끝난 뒤에도 비슷한 후회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설명은 편리한 대신 변화의 가능성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랜 시간 반복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무시했다고 느끼면 즉시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현재 상황만 보면 상대방이 무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그렇게 강하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면 과거의 경험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살펴본다고 해서 상대방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무의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무의식의 의식화’라는 말을 들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왜 저 사람의 행동만 유독 싫을까?”
“왜 다른 사람의 성공은 괜찮은데 저 사람의 성공은 불편할까?”
“왜 나는 같은 상황에서 항상 비슷하게 행동할까?”
이 질문들은 정답을 바로 찾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자동적으로 흘려보내던 반응을 잠시 멈추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감정은 종종 사건보다 먼저 나타납니다.
우리는 화가 난 다음에 이유를 찾고, 질투한 다음에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상처받은 다음에 상대방의 잘못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면 다른 것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인정받고 싶었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와 닮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주의점도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무례한 사람도 있고, 나를 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를 자신의 내면 문제로 돌리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사실 나와 같다”가 아닙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나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강하게 반응하는가?”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동시에 가능합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을 때 인간관계를 조금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이 나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때
우리가 평생 피하고 싶었던 감정이 오히려 나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났다는 사실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질투가 생긴 이유를 생각해보고, 누군가의 행동이 왜 그렇게 거슬렸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마음에 드는 답을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정하기 싫은 욕구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인정받고 싶었다는 것.
나도 성공하고 싶었다는 것.
나도 자유롭고 싶었다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어떤 욕구가 있는지 알게 되면 그 욕구를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방식으로만 표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가 유난히 마음에 걸린다면 바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잠시 멈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사람의 어떤 모습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정말 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한 불편한 모습은,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있었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타인을 분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타인을 바라보다가, 그 시선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순간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