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안상호, 고종 독살 의혹 사료 확인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행적 논란에 새로운 기록이 추가됐다. 경기 군포시가 발간한 향토사료에서 안상호가 1919년 고종 사망 당시 제기된 독살 의혹과 관련된 인물로 서술된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해당 자료는 독살 의혹을 사실로 확정하지 않았고, 관련 자료가 부족해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명시했다.

안상호의 행적은 최근 하영이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집안으로 소개한 뒤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활동과 토지 보유 기록 등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논란이 방송가를 넘어 정치권까지 확대됐다.

군포시 향토사료에 등장한 안상호

안상호 관련 내용이 확인된 자료는 군포시가 경기대학교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에 의뢰해 2004년 2월 발간한 학술조사용역 보고서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다.

이 보고서는 4장 ‘군포의 인물’에서 안상호를 근대 인물 가운데 첫 번째로 소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2년 6월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1904년 귀국한 뒤에는 순종의 전의로 근무했고, 이듬해 서울 종로3가에 개인 진료소를 개설한 것으로 서술됐다.

1919년 고종 사망 당시 독살 의혹 기록

논란이 된 부분은 1919년 1월 고종 사망 당시의 기록이다.

보고서에는 고종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안상호와 일본인 의사 모리야스가 진료에 참여했다고 적혀 있다.

이후 고종이 숨지면서 이들 의료진이 일본 측의 사주를 받아 독약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 안상호가 실제 독살에 관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해당 보고서 역시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고종 독살설 자체도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건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내용은 당시 의혹이 존재했고 이를 군포시 향토사료가 기록했다는 수준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안양 지역 기록은 다른 평가 담아

흥미로운 점은 안상호를 다룬 다른 지역 기록에서는 상반된 평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양 지역 향토사에서는 안상호를 항일 민족의식이 강한 인물로 소개한 기록이 있다.

안양시는 2020년 안상호가 고종 독살설과 관련해 무고를 당했다는 취지의 글을 공개하기도 했으나, 최근 해당 게시물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같은 인물을 두고 지방자치단체 자료마다 평가가 다르게 나타나면서 안상호의 행적을 판단할 때 개별 기록을 단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당시 자료와 사료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하영의 ‘4대째 의사 집안’ 발언에서 논란 시작

안상호의 과거 행적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8월 방송이었다.

하영은 KBS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일제강점기 활동을 둘러싼 과거 기록들이 다시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안상호가 1916년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포함된 사실도 알려졌다.

또한 1909년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을 공격했을 당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안상호가 포함됐다는 기록도 확인됐다.

소속사 해명 뒤 하루 만에 입장 변경

논란 초기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8월 10일 관련 내용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뒤 관련 기록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영 역시 1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사과문을 공개했다.

다만 안상호가 공식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인물인 것은 아니다.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과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모두 포함돼 있지 않다.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13일 라디오에서 설명한 내용도 안상호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여부가 아니라 일부 행적의 사실성에 관한 판단이었다.

2700평 토지 기록으로 국회까지 논란 확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이어졌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상호가 일제강점기에 보유했던 토지 기록을 언급하며 친일 재산 여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10년대 자료에는 안상호가 당시 시흥군 남면 금정리 235번지 일대에 약 2700평, 약 8900㎡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당 토지는 1983년 국가에 수용됐다.

다만 안상호의 후손이 당시까지 해당 토지를 계속 보유했는지, 수용 과정에서 보상금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하영 가족의 재산과 이 토지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된 바 없다.

친일 재산 조사 가능성도 제기

박은정 의원은 오는 12월 시행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근거로 해당 토지의 재산 형성 과정을 다시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재산이 실제 친일 행위의 대가로 형성됐는지 여부는 별도의 조사와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안상호가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토지 보유 사실만으로 친일 재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안상호 관련 기록, 사실과 의혹 구분이 핵심

하영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은 고종 독살 의혹, 친일단체 활동 기록, 이완용 치료 참여, 토지 보유 문제 등 여러 사안이 한꺼번에 부각되면서 확대됐다.

현재 문서로 확인되는 행적과 역사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의혹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종 독살 문제는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역사적 사실로 확정되지 않았다.

향후 안상호의 토지 형성 과정이나 일제강점기 활동에 대한 추가 사료가 확인될 경우 논란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단계에서는 공식 명단 등재 여부와 개별 기록의 사실성,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 사이를 구분해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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