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앞두고 조종사 서열 갈등…10년 만 파업 가능성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앞두고 조종사들의 서열, 이른바 시니어리티를 어떤 기준으로 정할지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막판 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조종사 서열은 단순한 근속 순서를 넘어 기장 승격과 대형기 전환 순번, 임금 체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어서 양측의 입장 차가 큰 상황이다. 최종 조정이 결렬될 경우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2016년 이후 10년 만에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합병을 약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갈등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조직을 하나로 통합할 때 기존 경력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사측은 서열 결정이 회사의 고유한 인사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특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기존 대한항공 소속 일부 조종사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6일 마지막 조정 절차…결렬되면 노조 파업권 확보

대한항공과 조종사 노조는 6일 지방노동위원회 주관으로 조정 기일을 진행한다. 조정 기한은 7일까지다. 이 기간 안에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조정이 최종 결렬되면 노조는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나설 수 있는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실제로 파업이 이뤄질 경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2016년 12월 이후 약 10년 만이다. 당시 노조는 2015년도 임금협상 결렬을 이유로 12월 22일부터 28일까지 7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다만 항공사는 일반 사업장과 달리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모든 운항을 중단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항공업은 2010년부터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어 조종사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운항을 유지해야 한다.

2016년 파업 당시에는 국제선 80%, 제주노선 70%, 내륙노선 50%의 운항을 유지해야 했다. 따라서 노조가 이번 조정 결렬을 통해 파업권을 확보하더라도 곧바로 항공편 전체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제 쟁의행위가 시작될 경우 일부 운항 일정과 인력 운영에는 영향을 줄 수 있어 향후 노조의 결정과 회사의 대응이 중요해진다.

핵심 쟁점은 조종사 ‘시니어리티’ 통합 방식

이번 노사 갈등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조종사들의 서열을 어떤 기준으로 다시 정할 것인지다. 항공업계에서 조종사 시니어리티는 단순히 회사 내 순번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종사 서열은 기장 승격 순번과 대형 항공기 전환 기회 등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다. 조종사가 언제 기장으로 임명되는지에 따라 기본급 체계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경력과 소득에 장기간 영향을 줄 수 있다. 양사 조종사들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서열 배치 기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정규 사번 부여일’을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는 방식이다. 대한항공에 입사한 민간 경력 조종사들은 일정 비행 경력을 갖춘 상태에서 입사하더라도 곧바로 정규 사번을 받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민간 경력 조종사들은 1000시간 비행을 마친 후 계약직으로 입사하고 회사 내부 교육 과정을 이수한 뒤 정식 사번을 받는다. 이에 따라 실제 입사와 경력 시작 시점보다 정규 사번 부여 시점이 뒤에 형성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노조는 이러한 상황에서 정규 사번 부여일만을 기준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의 통합 서열을 산정하면 기존 대한항공의 일부 민간 경력 조종사들이 상대적으로 뒤쪽에 배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적은 비행 경력을 갖고 입사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보다 오히려 서열이 낮아지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문제 제기다.

대한항공 “서열은 인사권”…노조와 교섭 대상부터 이견

대한항공 사측은 조종사 시니어리티 결정 방식 자체가 회사 고유의 인사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서열 결정 문제는 노조와 협상을 통해 정해야 할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측은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도 진행했으며, 통합 이후 기존 대한항공 조종사들에게 불합리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사 간 격차를 합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노조는 시니어리티가 승진과 기종 전환, 임금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조합원들의 근로조건과 분리해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인사권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기준을 결정할 경우 기존 구성원들의 경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은 단순히 어떤 날짜를 서열 산정 기준으로 삼을지를 놓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리티 결정 권한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측은 인사 운영의 영역으로 보는 반면 노조는 조종사의 처우와 경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임금 3.3% 인상·장거리 비행 후 휴식 확대도 협상안 포함

이번 노사 교섭에는 시니어리티 문제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노조는 임금 3.3% 인상과 장거리 비행 이후 휴식시간 확대 등도 함께 교섭안에 포함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앞둔 현재 상황에서는 조종사 서열 문제가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임금이나 휴식시간은 노사 협상을 통해 일정 수준의 조정이 가능하지만, 통합 이후 한번 결정된 서열은 기장 승격과 기종 전환 순번 등 장기간의 인사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종사 노조는 지난 9월 15일 서울에서 집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과정에서 기존 운항승무원 서열순위 제도를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합병 절차가 구체화될수록 양사 조종사를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조직에 편입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항공기와 노선, 브랜드를 결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인사제도와 경력 구조를 가진 직원들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야 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특히 조종사처럼 경력과 자격, 승격 순번이 촘촘하게 연결된 직군에서는 통합 기준이 개별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이 때문에 6일 조정과 7일까지 이어지는 조정 기한의 결과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가 합의에 성공하면 통합 전 갈등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지만, 최종 결렬될 경우 노조는 10년 만에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후 실제 파업 여부와 별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과정에서 조종사 인사 기준을 둘러싼 협상은 계속 핵심 과제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