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이 마르면 결정이 생기고 다시 물을 공급하면 녹는 일상적인 현상을 전류 제어 기술로 바꾼 ‘이온 스위치’가 개발됐다. UNIST 기계공학과 김태성 교수 연구팀은 나노미터 크기의 통로 안에서 소금 결정을 만들고 녹이는 방식으로 이온의 이동을 차단하거나 다시 흐르게 하는 소자를 구현했다. 전자 흐름을 제어하는 반도체 트랜지스터처럼 이온이 지나가는 길을 열고 닫는 구조로, 이온 기반 논리 회로와 생체 신호 제어 기술의 기본 소자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소금 결정이 나노 통로를 막아 전류를 끊는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이온이 이동하는 나노채널 내부에 소금 결정을 의도적으로 형성해 통로를 막는 것이다. 연구팀은 높이 약 120나노미터인 미세 통로에 염화칼륨 또는 염화나트륨을 녹인 용액을 채웠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에 해당하는 크기로, 이 정도로 작은 공간에서는 용액의 농도 변화와 결정 형성이 이온 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용액 속 이온이 모여 고체 형태의 소금 결정이 만들어지면 좁은 통로가 막히면서 이온이 더 이상 원활하게 이동하지 못한다. 이때 전류는 크게 줄어들어 스위치가 꺼진 상태가 된다. 반대로 결정이 다시 녹으면 막혔던 길이 열리면서 이온 이동이 재개되고 전류가 흐르는 켜짐 상태로 돌아간다.
전자회로의 트랜지스터가 전자의 이동을 조절해 신호를 켜고 끄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번 소자는 전자가 아니라 이온을 정보 전달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이온 기반 정보처리 기술은 ‘이온트로닉스’로 불리며, 전자회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만들고 제어하는 연구 분야다.
건조한 질소와 물로 결정 생성·용해 반복
연구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는 소금 결정을 한 번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생성과 용해를 반복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온이 흐르는 나노 통로 위에 질소 기체나 물을 흘릴 수 있는 별도의 통로를 배치하고, 두 통로 사이를 물 분자가 통과할 수 있는 얇은 막으로 분리했다.
위쪽 통로에 건조한 질소를 흘리면 아래쪽 용액에 있던 물이 막을 통과해 빠져나간다. 물의 양이 줄어들면서 용액 농도가 높아지고, 결국 녹아 있던 염이 결정 형태로 석출된다. 이렇게 생긴 결정이 나노채널을 막으면 이온 이동이 억제돼 전류가 차단된다. 반대로 위쪽에 물을 공급하면 결정이 다시 녹으면서 통로가 열리고 전류가 회복된다.
이 과정에는 ‘투과증발’이라는 현상이 활용됐다. 액체가 투과성 막을 지나 기체 상태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이용해 채널 내부의 물 양과 염 농도를 조절한 것이다. 별도의 복잡한 기계식 차단 장치 대신 용액의 농도 변화와 결정 생성 자체를 스위치 작동 원리로 사용한 점이 이번 연구의 특징이다.
32차례 반복 작동…켜짐 전류는 꺼짐보다 평균 156배
연구팀은 염화칼륨 용액을 넣은 이온 스위치를 32차례 연속으로 작동시키며 반복 동작 성능을 확인했다. 실험에서 켜짐 상태의 전류는 꺼짐 상태보다 평균 156배 크게 나타났다. 두 상태의 전류 차이가 뚜렷해 전류가 흐르는 상태와 차단된 상태를 구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작동 시간도 측정됐다. 건조한 질소를 공급한 뒤 소금 결정이 형성돼 전류가 차단되기까지는 평균 8.6초가 걸렸다. 이후 다시 물을 공급하면 3초 이내에 켜짐 상태로 돌아왔다. 즉 건조 과정으로 결정을 만들고 수분 공급으로 결정을 녹이는 동작을 이용해 하나의 소자에서 전류의 온·오프 상태를 반복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수치는 단순히 소금 결정이 생겼다는 관찰을 넘어 실제 스위치처럼 두 전류 상태를 구분하고 되돌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다. 특히 같은 원리로 여러 차례 동작시켰다는 점은 이온 흐름을 제어하는 기본 소자로 활용하기 위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두 개의 이온 스위치로 OR·AND 논리 연산 구현
연구팀은 단일 스위치의 온·오프 동작을 확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스위치 두 개를 하나의 칩 안에서 연결해 기본적인 논리 연산을 구현했다. 두 스위치를 병렬로 연결한 OR 회로는 두 입력 가운데 하나라도 1이면 1을 출력하도록 작동했고, 직렬로 연결한 AND 회로는 두 입력이 모두 1일 때만 1을 출력했다.
두 회로 모두 입력 조합에 따라 정상적으로 동작했다. 이는 소금 결정의 생성과 용해를 이용한 이온 스위치가 단순한 유체 제어 장치가 아니라 정보처리를 위한 회로 구성 요소로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논리 회로가 여러 트랜지스터를 연결해 연산을 수행하듯, 이온 기반 회로에서도 여러 스위치를 조합해 신호를 처리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생체 신호와 연결되는 이온 기반 회로
이온 흐름을 제어하는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생체 시스템의 신호 전달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서는 세포막에 있는 이온 통로가 열리고 닫히면서 신경 신호 전달 과정에 관여한다. 이번 연구처럼 이온의 이동 자체를 직접 제어하는 소자는 이러한 생체 작동 방식을 모방한 회로나 신경 자극 장치의 전류 제어 기술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김태성 교수는 소금물이 마르면 결정이 생기고 물을 더하면 다시 녹는 단순한 현상에서 출발해 논리 연산이 가능한 이온 회로를 만들었다는 점을 연구의 의미로 설명했다. 반도체 회로에서 트랜지스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온 스위치 역시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모방하거나 생체 신호를 다루는 이온 회로의 기본 소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이번 연구에는 UNIST 지성준 연구원과 서상진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김태성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과 UNIST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9월 25일 공개됐다.
이번 성과의 핵심은 친숙한 소금 결정의 생성과 용해 현상을 나노 수준의 전류 제어 방식으로 바꿨다는 데 있다. 앞으로 이온트로닉스 회로를 구성할 때 이러한 스위치가 어떤 형태로 집적되고, 생체 신호를 다루는 장치와 실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후속 연구에서 확인할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