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유엔 연설서 ‘핵 없는 한반도’ 제시…표현 수정 배경은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핵 문제의 단계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연결하는 새로운 외교 구상을 제시했다. 특히 연설문에 담길 예정이었던 ‘비핵화’라는 표현을 최종 단계에서 ‘핵 없는 한반도’로 변경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26년 9월 22일 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우선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관련 능력을 축소한 뒤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단계적 구상을 밝혔다.

또한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당사국 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북한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대화 구상을 제시하면서 북미 대화 재개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번 연설을 둘러싼 주요 쟁점은 최종 목표의 변경 여부보다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접근 방식과 외교적 표현의 차이에 있다. 청와대는 ‘핵 없는 한반도’와 ‘비핵화’가 같은 의미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반면,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협상 초기 단계에 무게를 둔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연설문 수정 배경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북한 핵 문제를 설명하는 용어와 단계별 추진 방식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을 첫 단계로 제시하고, 이후 능력 축소를 거쳐 핵 없는 한반도로 나아가겠다는 방향을 설명했다.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는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명시하면서 중단과 축소, 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올해 연설에서는 비핵화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실현할 목표를 ‘핵 없는 한반도’로 표현했다.

외교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연설문 준비 과정에서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통일부 사이에 관련 표현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됐다. 당초 초안에는 비핵화라는 용어가 포함됐지만 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으로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러한 수정이 정부의 공식적인 비핵화 목표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두 표현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용어의 차이를 별도의 정책 목표 변경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정부가 앞서 공개한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에서도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은 주요 정책 목표로 제시돼 있다. 이번 유엔 연설의 표현은 이러한 정책 방향과 연결되지만, 구체적인 협상 순서와 외교적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는 시각이 나뉜다.

정부의 공식 설명은 최종 목표가 유지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은 이번 표현 변경을 북한의 협상 참여 가능성을 높이고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려는 전략적 접근으로 해석했다.

두 설명을 구분하면 이번 연설의 핵심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밝힌 장기적인 정책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안한 초기 협상 방식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핵 개발 중단부터 능력 축소까지…단계별 접근법 제시

이 대통령이 제시한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은 한 번의 협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여러 단계에 걸쳐 상황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첫 번째 단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미 보유한 핵 능력의 즉각적인 폐기와 추가적인 능력 확대를 멈추는 조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두 번째 단계는 핵·미사일 능력의 축소다. 초기 단계에서 추가적인 능력 확대를 제한하는 데 합의하더라도 기존 핵 능력의 처리 문제는 별도의 협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능력 축소는 초기 조치 이후 진행할 중기적 과제로 제시됐다.

마지막 단계는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다. 이번 연설은 이러한 장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대화 재개와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 앞서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협상의 출발 조건으로 설정하는 방식에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해당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추가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을 중단시키는 조치와 대북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단계적 협상과 상호 조치를 대북 문제 해결의 한 가지 접근법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제재 완화와 핵 개발 중단을 교환하는 방안은 인터뷰에서 제시된 구상이다. 실제 합의가 체결됐거나 미국과 북한이 구체적인 교환 조건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 능력에 관한 협상은 검증 방식과 이행 순서, 관련국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번 연설에서는 단계별 방향이 제시됐지만 구체적인 협상 조건이나 각 단계의 이행 시한까지 발표되지는 않았다.

남북미중 대화 구상…종전과 평화체제 논의 연결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함께 이번 연설에서 제시된 또 다른 주요 내용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간 대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관련국이 논의에 참여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전쟁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전투가 중단됐지만 평화협정이 체결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군사적 긴장 완화뿐 아니라 관련 당사국 사이의 외교적 협의가 필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구상은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종전 관련 다자논의를 구체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제시한 당사국 간 대화 필요성을 유엔총회라는 국제무대에서 다시 강조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역할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국 간 협의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번 연설에서 남북미중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날짜나 개최 장소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청와대 역시 이번 제안의 취지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당사국 간 논의가 시작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4자 대화 구상은 현재 진행 중인 공식 협상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실제 대화가 성사되려면 북한을 비롯한 관련국의 참여 의사와 의제에 대한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한미 정상회담과 대북정책…향후 확인할 과제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북미 대화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이끄는 역할을 맡고 한국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취지의 ‘피스메이커와 페이스메이커’ 구상을 강조했다.

이번 유엔 연설에서 제시한 평화공존 구상도 이러한 외교적 역할 분담과 연결된다. 한국 정부가 북미 대화의 재개를 지원하고, 이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당사국 간 논의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방향이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원칙도 함께 제시됐다. 남북한이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포용적 평화공존, 소통 채널을 복원하고 신뢰를 축적하는 안정적 평화공존,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하는 책임 있는 평화공존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북한은 최근까지 핵무력 강화 방침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의 대화 제안에 호응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9월 20일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이어져 대화 제안과 군사적 긴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다.

향후 확인해야 할 부분은 북한의 공식 반응과 미국의 구체적인 협상 방침이다. 특히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을 초기 협상 의제로 설정할 수 있는지, 제재 문제를 비롯한 상호 조치를 어떻게 논의할지가 중요한 외교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핵 없는 한반도라는 장기 목표와 함께 대화 재개, 신뢰 구축, 단계적 핵 능력 축소라는 접근법을 제시했다. 정부는 기존 비핵화 목표가 유지된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앞으로 실제 외교 협의에서 이번 구상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되는지가 정책 방향을 판단할 주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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