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극장에서 458만 관객을 동원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가 무대를 북미로 옮긴 뒤 새로운 흥행 흐름을 만들고 있다. 9월 9일 현지 1560개 극장에서 개봉한 ‘호프’는 첫날 11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북미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고, 개봉 5일 만에 누적 수익 500만달러를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개봉 초반 빠르게 관객을 끌어모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장기 흥행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북미에서는 강도 높은 액션과 크리처 장르의 특징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미 200여개 국가와 권역에 선판매된 작품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이어질 국가별 극장 개봉 성적이 ‘호프’의 최종적인 글로벌 흥행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호프’는 ‘추격자’, ‘황해’,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장편 신작이다. 비무장지대 인근의 가상 항구마을 호포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SF·크리처 영화로, 황정민과 조인성, 정호연을 비롯해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이 출연했다.
북미 1560개 극장서 출발…첫날 110만달러로 2위
‘호프’의 북미 출발은 개봉 첫날부터 두드러졌다. 9월 9일 현지 156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하루 동안 11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전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당시 1위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로 2312개 극장에서 약 126만2245달러를 기록했다.
‘호프’의 첫날 극장당 평균 매출은 705달러였다. 같은 날 집계된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의 개봉일 매출로도 ‘디 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집계됐다.
첫날 이후에도 매출은 이어졌다.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주말 3일 동안 약 331만5000달러를 기록해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8위에 올랐고, 13일까지 개봉 5일간 누적 매출은 약 501만달러에 도달했다. 한화로 약 68억~69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나홍진 감독과 배우들도 북미 개봉 일정에 맞춰 현지 프로모션에 나섰다. 9월 7일 뉴욕에서 시작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오스틴,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에서 관객과 만나는 일정을 진행했다. 뉴욕 스크리닝 레드카펫에는 나홍진 감독과 조인성, 정호연이 참석했다.
북미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개봉 첫날의 순위만이 아니다. 개봉 규모가 유지되거나 확대되는지, 주말 이후에도 관객 유입이 계속되는지에 따라 장기적인 흥행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 ‘호프’ 역시 첫 주 500만달러 돌파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상영관과 관객을 유지할지가 다음 단계의 핵심 지표가 됐다.
국내 458만명과 북미 반응 차이…장르적 특징 주목
‘호프’의 해외 성적이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국내에서 나타난 흥행 흐름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7월 15일 국내 개봉 당시 강력한 초기 흥행세를 보였다. 개봉일 오전 기준 예매량은 59만9000여장, 예매율은 68.1%를 기록하며 올해 개봉작 가운데 가장 많은 사전 예매 관객을 확보했다.
개봉 후에는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5일째 200만명을 넘어섰다. 제헌절 연휴인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동안에는 150만4000여명이 관람했다. 개봉 2주 차 주말에도 76만7000여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하지만 빠른 출발이 끝까지 같은 속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5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과 이야기 전개, CG, 작품의 결말 등을 두고 관객 평가가 갈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흥행 속도가 낮아졌다. 현재 누적 관객은 약 458만명이다.
손익분기점과 관련해서는 보도 시점과 해외 선판매 실적을 반영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추정치가 제시됐다. 개봉 초기에는 약 700만명 수준이라는 업계 추정이 나왔지만 이후 해외 판매 수익 등을 반영한 다른 수치도 보도됐다. 제작·배급사가 최종적인 국내 관객 기준 손익분기점을 공식적으로 확정해 공개한 것은 아니어서 특정 관객 수를 실제 손익 여부와 동일하게 보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호프’가 국내 제작 단일 영화 가운데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라는 점은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제작비는 5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칸국제영화제 기간 진행된 해외 판매를 통해 200여개 국가와 권역에 선판매됐고,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당시 한국 영화 해외 선판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선판매를 통해 순제작비의 절반가량을 조기에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튼토마토 관객지수 79%…해외에서도 평가는 엇갈려
북미 개봉 후 현지 반응에서는 ‘호프’가 가진 액션과 장르적 특성이 눈에 띄고 있다. 로튼토마토에서는 9월 중순 기준 평론가 지수와 관객 평가 지표가 모두 79% 수준을 기록했다. 평점은 새로운 평가가 추가되면서 계속 변동될 수 있지만 북미 개봉 직후 관객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현지 관객 평가에서는 긴 러닝타임에도 액션과 긴장감이 이어진다는 반응과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반면 작품의 서사와 복잡한 설정을 지적하는 평가도 함께 나타났다. 국내에서처럼 북미에서도 모든 평가가 한 방향으로 모인 것은 아니다.
이런 반응은 ‘호프’의 작품 성격과 연결된다. 영화는 한국의 가상 공간인 호포항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주민들의 충돌, 추격과 액션 등 시각적인 장르 요소로 구성한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이 호포항 주민을 연기하고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해외 배우들도 작품에 참여했다.
특히 차량과 말을 활용한 고강도 액션, SF와 크리처 장르를 결합한 구성은 대사의 세부적인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내 관객에게는 서사의 개연성과 긴 러닝타임이 주요 평가 요소로 부각됐다면 해외에서는 장르적 볼거리와 액션 연출이 작품을 접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북미의 첫 주 성적만으로 국내와 해외의 평가가 완전히 반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북미에서도 작품의 서사와 완성도를 놓고 평가가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봉 초기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 이후 일반 관객의 입소문이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장기 흥행 여부를 가르게 된다.
칸부터 뉴욕·토론토·산세바스티안까지…다음은 글로벌 개봉
‘호프’는 북미 극장 개봉 이전부터 국제영화제를 통해 해외 관객과 접점을 넓혀왔다. 지난 5월 열린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처음 공개됐으며, 나홍진 감독에게는 ‘곡성’ 이후 다시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이 됐다.
이어 제25회 뉴욕 아시아 영화제에서는 센터피스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북미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제에서 다니엘 A. 크래프트 우수 액션시네마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에서는 ‘추격자’, ‘황해’, ‘곡성’ 등 나 감독의 장편 연출작을 소개하는 회고전도 진행됐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강렬한 장르 영화를 소개하는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 초청됐다. 이후 스페인에서 열리는 제7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펄락 섹션에도 이름을 올렸다. 펄락은 다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 가운데 스페인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장편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 극장 개봉 역시 북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호프’는 북미 개봉을 시작으로 호주와 영국, 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홍콩,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여러 시장에서 순차적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이미 200여개 국가와 권역에 판매된 만큼 국가별 실제 극장 성적이 쌓이면서 글로벌 흥행 규모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500만달러는 ‘호프’ 해외 흥행의 최종 결과라기보다 첫 번째 성적표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빠른 초반 흥행 이후 상승세가 둔화된 경험이 있는 만큼 북미에서도 두 번째 주 이후 매출 감소 폭과 상영관 유지 여부가 중요하다. 이후 주요 국가에서 순차 개봉할 때 비슷한 장르적 반응이 이어지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500억원이 넘는 제작 규모, 한국 영화 최고가를 기록한 해외 선판매, 칸 경쟁 부문을 포함한 국제영화제 초청에 이어 북미 첫 주 500만달러 돌파까지 ‘호프’는 국내 관객 수만으로 성과를 판단하기 어려운 글로벌 프로젝트가 됐다. 국내 458만 관객 이후 시작된 해외 극장 성적이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누적될지가 이 작품의 전체 흥행 성적을 판단할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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