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에 들어갔다가 막다른 길을 만났을 때 운전자가 직접 핸들을 계속 꺾으며 후진해야 했던 부담을 차량 기술이 덜어주는 방향으로 신차가 바뀌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차량이 지나온 경로를 기억한 뒤 후진할 때 스스로 조향을 보조하는 ‘기억 후진 보조(MRA)’를 그랜저와 아반떼에 이어 신형 투싼까지 확대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기술의 적용 범위다. 현대차는 올해 5월 출시한 준대형 세단 ‘더 뉴 그랜저’에 기억 후진 보조를 처음 적용한 뒤 준중형 세단 아반떼와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으로 빠르게 범위를 넓혔다. 상위 차급에서 먼저 선보인 주차·저속주행 편의기술이 대중적인 세단과 SUV까지 내려오는 흐름이다.
최근 신차는 실내 공간과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차체 크기가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 도심의 오래된 주차장이나 주택가 골목처럼 도로와 주차 공간의 크기가 함께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가 신형 투싼에 기억 후진 보조뿐 아니라 차량 주변과 노면을 확인하는 기능, 저속 충돌을 방지하는 기술을 함께 적용한 배경도 이런 운전 환경과 연결된다.
들어온 길 최대 50m 기억…후진할 때 조향을 차량이 보조
기억 후진 보조는 차량이 전진하면서 이동했던 경로를 저장하고 운전자가 기능을 실행하면 그 경로를 바탕으로 후진할 때 필요한 조향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좁은 골목처럼 차량을 돌릴 공간이 부족하거나 막다른 길에 잘못 진입했을 때 활용할 수 있다.
더 뉴 그랜저에 적용된 기억 후진 보조를 기준으로 보면 차량이 시속 30㎞ 이하로 전진할 때 최대 50m까지 주행 경로를 저장한다. 이후 기능을 실행하면 차량이 저장된 경로를 분석해 필요한 조향각을 계산하고 시속 10㎞ 이하에서 후진 조향을 지원한다.
기능의 핵심은 운전자가 지나온 길을 차량이 다시 이용한다는 데 있다. 좁은 공간에서 후진할 경우 운전자는 사이드미러와 후방 영상 등을 번갈아 확인하면서 핸들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돌려야 하는지 계속 판단해야 한다. 특히 길이 굽어 있거나 양쪽에 벽과 주차 차량이 있는 상황에서는 진입할 때 사용했던 조향 경로를 반대로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
기억 후진 보조는 이 과정 가운데 조향 부분을 차량이 맡도록 설계됐다. 다만 명칭 그대로 후진을 ‘보조’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주변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운전 원칙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이 기술을 2026년 5월 출시한 더 뉴 그랜저에 처음 적용했다. 당시 그랜저에는 기억 후진 보조와 함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 스마트 비전 루프, 전동식 에어벤트 등 새로운 편의·디지털 기술이 대거 들어갔다.
그랜저에서 아반떼 거쳐 투싼으로…적용 차급 빠르게 확대
기억 후진 보조의 두 번째 적용 차종은 8세대 ‘디 올 뉴 아반떼’였다. 현대차는 지난 6월 공개한 신형 아반떼에 이 기능을 동급 최초로 적용했다. 준대형 플래그십 세단에서 시작한 기술이 대표적인 준중형 세단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어 6년 만에 완전변경된 5세대 ‘디 올 뉴 투싼’에도 기억 후진 보조가 동급 최초로 적용됐다. 세단뿐 아니라 준중형 SUV까지 적용 영역이 넓어지면서 기억 후진 보조는 특정 고급 차종에만 머무는 기술에서 다양한 차급의 운전 편의기능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형 투싼에서는 이 기능의 필요성을 차체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 올 뉴 투싼은 이전 세대보다 전장이 60㎜, 전폭이 40㎜, 휠베이스가 30㎜ 늘어났다. 차체와 휠베이스 확대는 탑승 공간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지만 기존의 좁은 골목이나 주차 공간을 통과할 때 운전자가 느끼는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현대차는 이에 대응해 신형 투싼에 기억 후진 보조와 함께 다양한 주차 지원 기능을 구성했다. 주변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라운드 뷰 모니터에는 투명뷰 기능이 포함됐으며, 차량 하부 노면 상황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그라운드 뷰도 적용됐다.
저속에서의 안전기능도 강화됐다. 신형 투싼에는 ‘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 2’가 전 트림에 기본 적용된다. 저속으로 전진하는 과정에서 보행자나 장애물과 충돌할 위험이 커지면 제동을 보조하는 기능이다.
페달 오조작 방지까지…주차·저속 안전기술 함께 강화
현대차가 신형 아반떼와 투싼에 적용한 기술 가운데 또 하나 눈에 띄는 기능은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는 상황을 차량이 감지해 구동력을 제한하고 제동을 돕는 방식이다.
더 뉴 그랜저에 적용된 시스템의 경우 차량 앞뒤 약 1.5m 이내에 벽이나 장애물이 있는 상태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급격하게 밟는 상황에 대응하도록 설계됐다. 신형 아반떼에도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가 적용됐으며, 신형 투싼에서도 해당 안전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최근의 주차 지원기술이 단순히 주차선을 맞추거나 후방 화면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운전자의 조향을 돕는 기억 후진 보조, 차량 주변을 보여주는 영상 기술, 장애물 충돌을 줄이기 위한 제동 보조, 페달을 잘못 조작했을 때 대응하는 기능이 하나의 저속주행 안전·편의 체계로 결합되는 방향이다.
특히 투싼처럼 차체 크기가 세대 변경을 거치면서 확대된 모델에서는 이런 기술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 넓어진 실내와 커진 차체라는 상품성의 변화에 맞춰 좁은 공간에서 운전자가 느낄 수 있는 부담을 전자제어와 센서 기술로 보완하는 구조다.
신형 투싼은 안전기술에서도 새로운 사양을 추가했다. 충돌로 차량의 주 전원이 차단되는 상황에서도 예비 전원을 이용해 문 잠금 해제 기능을 유지하는 ‘도어 언락 전원 이중화’가 현대차 최초로 적용됐다. 현대차는 10월 중 디 올 뉴 투싼의 가격을 공개하고 국내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플레오스 커넥트도 그랜저·아반떼 이어 투싼 탑재
주차 지원기술만 같은 확산 경로를 밟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 역시 더 뉴 그랜저를 시작으로 아반떼와 투싼으로 적용 차종이 확대되고 있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대화면 디스플레이와 생성형 인공지능 기반 음성 비서 ‘글레오 AI’, 차량용 앱 마켓 등을 결합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활용하는 글레오 AI는 대화의 맥락과 주행 상황을 이해해 음성 명령을 처리하도록 개발됐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5월 더 뉴 그랜저를 시작으로 플레오스 커넥트를 순차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약 2천만대에 탑재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현재 더 뉴 그랜저와 디 올 뉴 아반떼에 적용됐으며, 5세대 투싼은 현대차 SUV 가운데 처음으로 플레오스 커넥트를 탑재했다.
결국 올해 현대차 신차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개별 편의사양 하나의 추가보다 적용 방식에 있다. 기억 후진 보조와 플레오스 커넥트 모두 그랜저에서 먼저 등장한 뒤 아반떼와 투싼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상위 차종에서 먼저 선보였던 조향·안전·AI 기반 디지털 기술을 판매량이 많은 준중형 세단과 SUV까지 적용하면서 첨단 편의기술의 대중화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신형 투싼의 국내 판매가 시작되는 10월에는 가격과 트림별 세부 사양도 공개될 예정이다. 차체가 커진 5세대 투싼에서 기억 후진 보조와 서라운드 뷰, 그라운드 뷰, 주차 충돌방지 기능을 어떤 트림과 구성으로 선택할 수 있는지도 실제 구매 단계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