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억 ‘군체’에서 5억 ‘실낙원’까지…연상호의 두 가지 영화 제작법




한쪽에서는 순제작비 170억원 규모의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약 5억원으로 심리 스릴러를 완성한다. 연상호 감독이 제작 규모가 극단적으로 다른 영화 두 편을 같은 해 선보이며 자신만의 제작 방식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 대규모 상업영화 ‘군체’에 이어 저예산 신작 ‘실낙원’까지 해외 영화제의 선택을 받으면서 작품 규모에 구애받지 않는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군체’가 지난 5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을 거쳐 국내 극장에서 595만 관객을 동원했다면, ‘실낙원’은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도 공식 초청됐으며 국내에서는 오는 10월 21일 개봉한다.

같은 감독의 작품이지만 제작 규모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군체’가 거대한 제작비와 장르적 볼거리를 앞세운 상업영화라면 ‘실낙원’은 제한된 제작비 안에서 인물과 심리, 가족 관계에 집중한다. 연상호 감독이 대작과 저예산 영화를 번갈아 제작하는 방식이 일회성 시도가 아니라 하나의 작업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관심이 모인다.

170억원 ‘군체’와 5억원 ‘실낙원’, 같은 감독의 전혀 다른 선택

두 작품의 차이는 제작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상호 감독이 밝힌 ‘군체’의 순제작비는 170억원이다. 좀비 장르를 확장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로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 등이 출연했다. 해외 판매가 이뤄지면서 극장 관객 기준 손익분기점은 300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연 감독은 개봉 당시 설명했다.

영화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연상호 감독에게는 ‘부산행’,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이은 네 번째 칸 진출이었다. 국내 개봉 후에는 59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반면 ‘실낙원’의 제작비는 약 5억원이다. ‘군체’와 비교하면 3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규모다. 대규모 재난 장면과 장르적 스펙터클 대신 두 인물 사이의 심리와 가족 관계를 중심에 놓았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영화 제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25년 공개한 영화 ‘얼굴’은 순제작비 약 2억원으로 제작됐다. 약 20명 규모의 스태프가 참여해 3주 동안 13회차 촬영으로 완성됐고, 극장에서는 100만명을 넘어 최종 108만 관객을 동원했다. 극장 매출은 약 110억원에 달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한국 상업영화와 비교하면 ‘얼굴’은 제작 방식 자체가 달랐다. 촬영 기간과 인력, 제작 규모를 크게 압축하고 이야기와 배우의 연기에 집중했다. ‘실낙원’은 이런 제작 방식의 계보를 잇지만 제작비를 5억원 수준으로 높였다. 저예산이라는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제작 여건을 일부 확장한 셈이다.

‘실낙원’ 토론토 월드 프리미어…부산 거쳐 10월 21일 개봉

‘실낙원’은 제작비 규모와 별개로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돼 지난 9월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공개됐다. 연상호 감독과 주연 배우 김현주, 배현성이 현지 레드카펫과 상영 행사에 참석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상영은 약 2,300석 규모의 4회차가 티켓 오픈과 함께 매진됐다. 월드 프리미어 이후 해외 영화 전문매체에서는 가족 스릴러로서의 분위기와 김현주·배현성의 연기에 관한 평가가 이어졌다.

토론토에 이어 국내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실낙원’을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했다. 이 부문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감독들의 신작과 해당 연도의 주요 화제작을 소개하고 감독과 배우가 관객을 만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실낙원’은 부산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국내 관객에게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있다. 9년 전 아들의 실종 사고를 겪은 류소영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어린 시절 아들을 재현해 만나면서 상실감을 견뎌왔다. 그러던 중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실제 아들 류선우가 9년 만에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김현주가 엄마 류소영을, 배현성이 아들 류선우를 연기한다. 소영은 오랫동안 AI로 재현된 어린 아들을 만나왔지만 현실로 돌아온 선우에게는 낯섦과 불안을 느낀다. 그 결과 재회 자체가 감동적인 결말이 되기보다는 모자 사이의 불편한 관계와 심리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된다.

작품은 오성은 작가의 소설 ‘블랙 인페르노’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의 원안에는 연상호 감독과 류용재 작가가 참여했다. 연 감독은 ‘실낙원’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고 소개했고, ‘얼굴’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보다 더 어둡고 서늘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출발은 어머니가 쓴 3페이지…AI와 모자의 관계로 확장

‘실낙원’의 출발점에는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가 있다. 연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어머니가 연습장에 적어놓은 약 3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작품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어머니가 작성한 이야기를 토대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의 ‘실낙원’으로 완성했다.

작품 속 AI 역시 단순히 미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인공지능으로 복원된 어린 아들에게 의지해 살아왔다는 설정을 통해 기억 속의 존재와 현실에서 돌아온 사람 사이의 간극을 만든다.

연상호 감독은 가상현실과 AI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피부에 닿는 사회적 이슈라고 설명했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이런 기술이 현실에서 사용될 때 인간관계에서 어떤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이는 ‘군체’와 ‘실낙원’의 제작비 차이만큼이나 연 감독이 사용하는 장르적 접근의 차이를 보여준다. ‘군체’가 대규모 제작 환경을 이용해 재난과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시각적으로 확장했다면 ‘실낙원’은 한 가족의 관계와 심리를 좁은 공간 안에서 파고드는 방식을 택했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과 ‘사이비’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해 ‘부산행’, ‘반도’와 같은 대규모 상업영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기생수: 더 그레이’ 등 다양한 규모와 플랫폼을 오가며 작업해왔다. 올해에도 영화 두 편에 더해 일본 넷플릭스와 협업한 시리즈 ‘가스인간’을 7월 선보이는 등 작업 영역을 넓혔다.

대작과 저예산을 번갈아 제작하는 연상호의 작업 방식

연상호 감독에게 대작과 저예산 영화의 병행은 단순히 제작비를 달리하는 전략만은 아니다. 그는 ‘실낙원’ 제작보고회에서 상업영화를 작업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작은 영화를 만들며 풀고, 저예산 작품에서 생긴 스트레스는 다시 큰 영화나 해외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해소한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제작 환경을 번갈아 경험하는 것이 다음 작업을 위한 일종의 재충전 방식이라는 의미다. 대형 상업영화에서는 많은 제작 인력과 자본을 활용해 규모 있는 장면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만큼 흥행과 제작 과정에서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작은 영화는 제작 규모가 제한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압축된 환경에서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다.

‘얼굴’의 흥행은 이 가운데 저예산 제작 방식의 가능성을 실제 극장 성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순제작비 2억원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108만 관객과 약 110억원의 극장 매출을 기록하면서, 연 감독은 이후 ‘실낙원’으로 저예산 제작을 이어갔다.

동시에 그는 170억원 규모의 ‘군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026년에는 칸에 소개된 대규모 장르 영화와 토론토에서 처음 공개된 5억원 규모 심리 스릴러를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제 관심은 ‘실낙원’이 해외 영화제에서 받은 관심을 국내 극장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에 모인다. 작품은 토론토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10월 21일 국내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다. 지난해 ‘얼굴’로 저예산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확인한 연상호 감독이 약 5억원 규모의 ‘실낙원’에서도 같은 제작 모델의 가능성을 이어갈지가 다음 확인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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